- 1935년 1월 11일 영국 왕립천문학회에서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가 백색왜성의 질량 한계 이론을 발표했으나,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 경에 의해 공개적으로 비판받음.
-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의 수학적 결론이 별의 붕괴를 시사한다는 점을 "터무니없는 소리"라며 공격했고, 그의 연구를 "별의 어릿광대짓"이라 폄하함.
- 닐스 보어, 볼프강 파울리, 폴 디랙 등 당대 유수의 물리학자들은 찬드라세카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, 천문학계의 권위자인 에딩턴의 영향력 때문에 공적으로 그를 방어하지 못함.
에딩턴의 공개적 비판과 영향력
-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결합한 방식을 "합법적이지 않은 결합"이라 비난함.
- 1935년 파리에서 열린 학회에서도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의 연구를 조롱거리로 만들었으며, 러셀의 만류로 찬드라세카르는 공식적인 반박 기회조차 얻지 못함.
- 동료 과학자 윌리엄 맥크리는 에딩턴의 주장이 표면적으로 설득력 있게 들렸기 때문에 그를 비판하기 어려웠음을 회고함.
1939년의 대립과 갈등의 절정
- 1939년 7월 케임브리지 대학 만찬에서 디랙, 모리스 프라이스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에딩턴의 모순된 논리가 드러남.
- 프라이스가 에딩턴의 논리를 그대로 재현하자 에딩턴은 그것을 지지했다가, 이후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임.
- 찬드라세카르는 에딩턴의 독단적인 태도와 본인의 근본 이론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상황을 목격하며 그와 완전히 결별함.